"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순간"
📅 1910년 3월 4일, 안중근 의사 사형 집행
1. 안중근 의사의 생애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의사(義士)였습니다. 그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교적 가르침과 애국심을 배웠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일본의 침략을 강하게 비판하며 적극적인 항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대한의군(大韓義軍)을 조직하고,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조국을 짓밟은 장본인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2. 하얼빈에서 울려 퍼진 총성 –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령 하얼빈 역에서 대한제국을 침탈한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합니다. 그는 "코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를 외치며 세 발의 총탄을 명중시켰고,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내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으며,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을사늑약을 강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토는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원흉이며,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전쟁을 수행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당당히 소개했습니다.
3. 사형 선고와 마지막 순간
일본은 안중근 의사를 단순한 암살자가 아닌 ‘전범’으로 규정하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1910년 3월 4일, 일본은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형 집행 전까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한국과 중국, 일본이 협력해야만 동양의 평화가 온다는 신념을 마지막까지 지켰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전해집니다.
4. 안중근 의사의 유언과 미완의 장례
안 의사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고국에 묻어다오. 대한이 독립하면 그때 나의 유해를 가져가 달라."고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상태로, 대한민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5. 안중근 의사가 남긴 의미와 영향
✔ "하얼빈 의거"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그의 동양평화론은 단순한 민족 독립을 넘어선 평화 사상으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 사후에도 독립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추서했습니다.
6. 우리는 왜 안중근 의사를 기억해야 하는가?
안중근 의사의 삶과 희생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정신을 기억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되새겨야 합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겠다."-안중근 의사 유언 중
1910년 3월 4일, 안중근 의사의 처형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그의 신념과 용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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